교차된 풍경에서

『한국화와 동양화와 韓国画と東洋画と』 (기획: 콘노 유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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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된 풍경에서

조혜수

커튼1을 열면서 풍경이 시작된다. 거울2을 통해서 보는 풍경이다. 상상 속 채석장3에서 돌을 캐듯이, 어디선가 본 얼굴4들을 절대로 만나지 않는 가느다란 평행선5으로 놓아보면서, 펼쳐졌다 사라지는 머나먼6 풍경7 속 쌀쌀함이 남기고 간 따뜻한 생채기8.

‘한국’화는 무엇인가. 동양화라는 이름에서 출발된 한국화는 더이상 지역을 바탕으로 한  명칭이라기 보다는 사용되는 재료의 속성을 나타내는 이름에 가까워졌다. 회화 내에서의 장르적 분리도 희미해진 시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 도쿄에서 전시되면서, 잊혀진 기원을 곱씹고 지금의 풍경으로서 다시금 작품을 보게 된다. 

이는 전시 포스터의 이미지로 이희욱 작가의 「거울-image」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기모노를 입은 한국 여성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 그림은, 한국화에 대한 비유로도 느껴진다. 조선은 한때 거울 속의 세상처럼, 세상에 잠시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의 공동체’였으며, 식민지의 유산을 입고 있지만 달라질 수밖에 없는 미끄러짐 같은 것들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독자성에 이르렀다. 일본과의 관계도 함께 고려했을 때 이제는 한국화도 ‘동양화’로부터 출발된 역사적 궤적을 이미 떠나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느 날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자손처럼, 선언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위치성과 관계성을 규정짓게 된 입장에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금 일본에서 한국의 그림이 동양화라는 이름과 함께 소개되는 일은 매우 대담한 시도이다. 반드시 작품이 정치성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전시가 열리는 위치성 때문에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흥미롭다. 

이는 정치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많은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의 시공간을 담고 있다. 한국이라 이름 붙이는 풍경의 이 시각적 리듬들은, 마치 때로는 흰색이나 검정색보다 짙어 보이는 그레이존처럼, 도쿄의 외곽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빗겨난 풍경이 된다. 랜드스케이프도 정치적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반드시 풍경이 교차되고 겹쳐지고 부딪힐 때, 그것을 마주하고 서있는 사람의 정체성에 의해 발견된다. 대항마 없는, 싸울 대상이 없는 정치성이다.

일본에서 보는 한국의 그림들은 내게 ‘커튼 앞의 실루엣’이며, ‘거울에 비친 얼굴’이자, ‘분리되어 어긋나는 기억’, ‘내면화된 이미지’, ‘가변적인 틈새’, ‘앉을 수 없는 먼 의자’, ‘틈 속에서 새어 나오는 시간’, 그리고 ‘온도의 낙차’, 그 그대로의 비유로 설명될 수 있었다. 전시 제목 『한국화와 동양화와』에 대해, 기획자는 그 뒤를 이을 단어가 ‘서양미술’, ‘추상’, ‘구상’, ‘기원’, ‘특이성/오리지널리티’, ‘일본’, ‘대한민국’ 일지도 모른다고 전시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게 그 빈칸은 ‘풍경’이었다.

한국화와 동양화 사이의 혹은 그 너머의 혹은 그 이전의, 풍경이라 일컬을 수 있는 모든 시공간적 문맥들이 이 빈칸에 있다. 하지만 풍경은 거울의 투영처럼, 제주의 바람처럼, 사람을 접함으로써만 비유되면서 존재해가고, 풍경이라는 이름으로 발화하는 순간 오독 되어 배경으로 전락해버리는 묘한 구석이 있다. 그러니 이 빈칸이 어쩌면 가장 적절한 풍경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도쿄에 서있는 자신의 위치성을 비밀스럽게 기입했을 때 문장은 가장 또렷해지고 있었다.

1  양유연 「Black Curtain」 각 53 x 45cm, 장지에 아크릴, 2021
2  이희욱 「거울-image」 72.7 x 60.6cm, 린넨에 유화구, 2021
3  최가영 「산, 채석장-Marija Curk로부터」 캔버스에 아크릴, 2020
4  최수련 「태평녀」 145 x 112cm, 린넨에 유화구, 2020
5  김혜숙 「Curve」 72.7×53.3cm 장지에 샤프펜, 먹, 채색 2021
6  이은지 「Creeper/Climber///exhales.sponge.restless/」 한지에 흑연, 담채, 자석 (화첩)
7  이예진 「초록의 여름색」 장지에 채색, 2022
8  권혜성 「늦가을 음산한 날,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145 x 75cm, 장지에 콩테, 2019

cho.hyesu.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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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화와 동양화와 전시 연계 토크 – 한국화/동양화라는 틀 : 끌어안고 교차하고 작별하기 (YouTube)
일시 : 2022년 9월 16일 오후 2시 – 4시
참여 패널 : 콘노 유키, 이문석 (독립기획자)
내용 :
기획전 <한국화와 동양화와>는 그 단어가 규정하는 개념적인 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전시 연계 토크는 일본에서 열린 전시를 되돌아보면서 한국화란 무엇이고, 동양화와 어떻게 다르고/같은지, 더 나아가 일본화나 서양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서울의 전시장에서 고민해본다.
이를 위해 “한국화와 동양화와” 다음의 네 개의 키워드를 출발점 삼는다.
1.일본, 2.정신성/정체성, 3.풍경, 4.현대성.
네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국화와 동양화를 구성하는 개념적인 틀을 풀어 고민해본다.

Hello, I’m Hyesu. I live in Tokyo, Japan, and mostly write in Korean.

Living with more than two languages means living in more than two temporalities. Just as a single body holds multiple sites of memory, language isn’t necessarily bound by national borders. Some memories carry a language of their own, and I often think about the politics that exist between those layered times.

I usually introduce myself as a curator or researcher. Mostly when I need to sound proper. But to be honest, I’m not very fond of the word. Because what I do—making projects and exhibitions, writing, researching, reading and thinking, and simply getting by—are all too entangled to be separated.

This page came out of that entanglement. Rather than a neatly polished portfolio, I intend to keep it as a kind of living record, a space for encounters, a notebook for testimony.
Please feel free to drop by anytime and say hello.

P.S.
I have a soft spot for the dead, the invisible, and the unspeakable.